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 뇌가 받는 영향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져... 알츠하이머와 연관 가능성 제기

배우자 사별 시 남성은 ‘뇌 노폐물’ 축적, 여성은 ‘신경세포 손상’ 뚜렷

경제적 스트레스 종류에 따라서도 뇌 위축 부위 성별 차이 보여

인생에서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스트레스가 단순히 심리적 고통을 넘어, 치매의 가장 흔한 유형인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위험을 높이는 구체적인 뇌의 변화를 유발하며, 그 양상이 성별에 따라 뚜렷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주목받고 있다.
알츠하이머 원인 남녀 차이
알츠하이머 원인 남녀 차이


지금까지 알츠하이머병의 위험 요인은 주로 고혈압, 식습관, 운동 부족과 같이 개인의 노력으로 통제 가능한 생활 습관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직, 심각한 재정난처럼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중대한 삶의 사건들이 뇌 건강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스페인의 한 공동 연구팀은 중년 성인 1,290명의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거에 겪었던 특정 스트레스 경험이 뇌의 생물학적 지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정밀하게 추적 분석했다. 연구 시작 당시 인지적으로 건강했던 참여자들의 뇌는, 특정 스트레스 사건 이후 성별에 따라 두드러진 차이를 나타냈다.

 사별의 슬픔, 남녀 뇌에 각기 다른 상흔 남겨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와 사별하는 큰 슬픔을 겪은 사람들의 뇌는 성별에 따라 각기 다른 병리적 변화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알츠하이머병의 핵심 원인 물질로 알려진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는 뇌세포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는 일종의 ‘노폐물 덩어리’가 쌓이는 현상이다.

반면, 여성의 뇌에서는 신경세포 자체를 안에서부터 파괴하고 병들게 하는 ‘타우 단백질’의 수치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이는 동일한 슬픔을 겪더라도 남성은 뇌의 환경이 오염되는 방향으로, 여성은 뇌세포 자체가 직접적으로 손상되는 방향으로 질병의 위험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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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적 스트레스, 종류 따라 남녀 뇌 타격 방식 달라

경제적 어려움 역시 남녀의 뇌에 다른 영향을 미쳤다. 기억, 감정, 사고 등 고등 정신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핵심 영역인 ‘회백질’의 부피 변화에서 뚜렷한 차이가 관찰됐다.

남성의 경우 ‘실업’을 경험했을 때 이 회백질의 부피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여성의 경우엔 ‘심각한 재정적 손실’을 겪었을 때 회백질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스트레스의 구체적인 종류에 따라서도 남녀의 뇌가 타격받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성별 차이, 사회·심리적 환경에서 비롯

연구팀은 이러한 차이가 남성과 여성이 처한 사회·심리적 환경과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남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친밀한 관계의 폭이 좁아 배우자 상실 시 느끼는 고립감이 더 클 수 있으며, 전통적인 사회적 역할 기대 때문에 실직이 주는 압박감과 충격이 뇌 건강에 더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여성의 경우, 역사적으로 남성에 비해 재정적 안정성이 낮았던 경험으로 인해 돈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고 만성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지속적인 심리적 불안이 뇌의 구조적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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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의의와 향후 과제

이번 연구는 인생의 큰 고난이 단순히 ‘기분 탓’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뇌의 물리적 구조와 기능을 바꾸어 장기적으로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중요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다.

물론, 연구 참여자의 인종 구성이 편중되어 있다는 점은 이 결과를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하기 어렵게 만드는 한계로 지적된다. 그러나 성별에 따라 스트레스가 뇌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향후 성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치매 예방 및 치료법 개발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장해영 기자 jang99@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