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1, 람보르기니 쿤타치, 그리고 폭스바겐 골프.
한 사람의 취향을 넘어, 한 기업의 미래 방향을 해석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다.
911 / 포르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차로 포르쉐 911, 람보르기니 쿤타치, 폭스바겐 골프를 꼽았다. 얼핏 보면 슈퍼카와 대중적인 해치백을 아우르는 자동차 애호가의 넓은 스펙트럼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선택은 단순한 취향 고백이 아니다.
오히려 각기 다른 세 차종이 상징하는 가치는 현대차가 나아갈 미래의 이정표와 같다. 바로 ‘지속적 진화’, ‘디자인 혁신’, 그리고 ‘대중적 완성도’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다. 5조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그룹 총수가 어떤 관점으로 자동차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포르쉐 911처럼, 어떻게 과거를 지키며 진화할까
골프 / 폭스바겐
이질적인 조합 속에서 가장 먼저 눈여겨볼 차는 포르쉐 911이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후방 엔진 구조와 특유의 실루엣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가 요구하는 최신 기술을 끊임없이 흡수해 온 모델이다. 핵심은 과거의 유산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혁신을 쌓아 올리는 방식이다.
이러한 진화 공식은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와 아이오닉 시리즈의 전략과 정확히 겹친다. 반짝 유행으로 끝나는 모델이 아닌, 하나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품군을 확장하며 브랜드의 전동화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911이 긴 시간 동안 브랜드 자산을 축적했듯, 아이오닉 역시 전동화 시대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제를 안고 있다.
쿤타치의 파격, 왜 디자인이 기술보다 중요해졌나
정의선 회장 / 온라인 커뮤니티
그렇다면 1970년대 등장한 람보르기니 쿤타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쐐기형 차체와 하늘로 열리는 시저 도어는 당시 자동차 시장에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안겼다. 성능 수치보다 강렬한 디자인이 먼저 떠오르는, 자동차가 감성을 움직이는 예술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현대차그룹 역시 디자인을 미래 전략의 핵심 언어로 삼고 있다. 포니의 유산을 재해석한 ‘N 비전 74’ 콘셉트카나 픽셀 램프로 과거와 현대를 연결한 아이오닉 5가 대표적이다. 전기차 시대에는 엔진 성능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운 만큼, 첫인상을 결정하는 디자인의 가치는 기술력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정 회장이 쿤타치를 언급한 배경에는 이러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있다.
결국 기본기, 골프가 말하는 대중차 완성도의 힘
화려한 슈퍼카들 사이에 이름을 올린 폭스바겐 골프는 다소 의외의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골프는 실용성과 기술의 균형을 통해 ‘대중차의 교과서’로 불리는 모델이다. 수억 원대 슈퍼카와는 다른 길이지만, 더 많은 사람이 매일 이용하는 차에서 높은 완성도를 구현하는 것은 기업에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이는 아반떼, 투싼 등 현대차의 주력 모델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가격, 품질, 실용성이 조화를 이룰 때 소비자의 신뢰를 얻고, 이를 기반으로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가 성장한다. 만약 당신이 다음 차를 고민한다면, 단순히 성능 수치 너머의 가치를 따져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혁신은 비싼 차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다.
플레오스 커넥트 / 현대차그룹
결국 정의선 회장이 꼽은 세 대의 차는 현대차그룹이 그리는 미래 모빌리티의 큰 그림을 설명하는 조각들이다. 포르쉐처럼 오래도록 진화하고, 쿤타치처럼 강렬한 감성을 만들며, 골프처럼 대중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드는 것. 여기에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와 수소 생태계, 로보틱스까지 더해져 사람의 이동을 더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인 셈이다. 그의 취향은 곧 현대차의 전략이었다.
수소차 넥쏘 / 현대자동차
쿤타치 / 람보르기니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