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3년 전 도입해 노인 운전 사고 45% 줄였지만... 국내 보급률은 0.01%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 ‘전무’ 상태, 2029년 의무화까지 운전자 안전은 각자도생에 맡겨진 현실을 짚어본다.

기아 EV 5 / 사진=기아
기아 EV 5 / 사진=기아


“분명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운전자의 항변.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상당수 사고의 원인은 차량 결함이 아닌 ‘페달 오조작’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고령 운전자에게서 빈번하게 발생한다.

해결책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국내 도입은 거북이걸음이다. 4월의 주말, 나들이에 나서는 운전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이유다. 일본의 성공적인 사례, 한국의 더딘 대응, 그리고 안전을 가로막는 비용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본다. 단돈 40만원으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기술이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13년 앞서간 일본, 사고 90% 예방 효과



일본은 이미 13년 전인 2012년,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닛산이 처음 개발한 이 기술은 주차장 등 저속 주행 환경에서 차량 전후방의 장애물을 감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밟아도 차를 자동으로 멈추게 한다.

이후 토요타, 혼다 등 주요 제조사들이 기술 도입에 동참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2025년 기준 일본 신차의 93%가 이 장치를 기본 사양으로 탑재하고 있으며, 고령 운전자가 보유한 차량의 90%에도 장착이 완료됐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이 장치는 단독으로 사고의 63%, 자동긴급제동장치(AEB)와 함께 작동하면 최대 90%까지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실제 도입 이후 일본 내 고령 운전자 사고율은 45%나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국 보급률 0.01%, 2029년까지 기다려야



반면 한국의 현실은 참담한 수준이다. 2025년 기준 국내에서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가 기본으로 장착된 차종은 현대 캐스퍼 일렉트릭, 아이오닉 6 N, 기아 EV5 단 3종뿐이다. 국내 등록 차량 2,500만 대 중 해당 장치를 갖춘 차량은 고작 200여 대로, 보급률은 0.01%에 불과하다.

정부는 2029년부터 신차에 이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2030년부터는 3.5톤 이하 버스와 트럭으로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일본보다 무려 17년이나 뒤처진 조치다. 그때까지 발생할 수많은 사고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효과는 입증됐지만… 40만원이 가로막은 안전



장치의 효과는 국내에서도 이미 확인됐다. 지난해 정부가 141명의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시범 사업에서 총 71건의 페달 오조작 상황이 발생했지만, 장치 덕분에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장치는 브레이크가 80% 이상 밟힌 상태에서 엔진 회전수가 4,500rpm을 넘어서면 급가속을 차단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특히 시속 15km 이하 저속 구간에서 효과가 크다.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과 지원 부족이다. 장치를 별도로 구매해 설치하는 데 약 40만원이 들지만, 국비 지원은 전무하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지원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2026년 65세 이상 택시 및 소형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5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지만, 전체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페달 오조작은 고령 운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초보 운전자나 숙련된 운전자 역시 긴급 상황에서는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차 의무화도 중요하지만, 이미 운행 중인 수많은 기존 차량에 대한 장착 지원이 시급한 이유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