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에는 단 두 줄, 현장에선 수위 놓고 감독과 다툼 일쑤…결국 촬영 중단 사태까지
배우 이미숙이 과거 에로물 촬영 관련 비한인드를 전했다. 유튜브 채널 ‘숙스러운 미숙씨’ 캡처
배우 이미숙이 수십 년간 묻어뒀던 과거 촬영장의 기억을 꺼내놨다. 최근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팬들과 소통에 나선 그가 80년대 에로물 촬영 당시 겪었던 부당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그가 지목한 일부 감독의 그릇된 연출 의도와 주먹구구식 대본, 배우와 제작진 간의 수위 다툼 문제는 당시 연예계의 어두운 단면을 짐작하게 한다. 대체 40년 전 촬영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작은 지난 12일 이미숙의 유튜브 채널 ‘숙스러운 미숙씨’에 올라온 한 영상이었다. ‘촬영 끝나면 클럽 갔다(?)’는 제목의 영상에서 그는 40년 지기들과 남한산성을 찾아 과거를 회상하며 대화를 나눴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과거 작품 활동으로 흘러갔다. 이미숙은 대본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에로물 같은 경우는 대본을 상세하게 안 쓴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의 기억은 충격적일 만큼 구체적이었다.
배우 이미숙이 과거 에로물 촬영 관련 비한인드를 전했다. 유튜브 채널 ‘숙스러운 미숙씨’ 캡처
대본엔 ‘타오르는 불’ 두 줄…수위는 왜 안정해주나
당시 대본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묻는 말에 그는 생생한 예시를 들었다. 대본에는 그저 ‘산장에 갔다.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은 지문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배우의 감정선이나 행동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 없이, 결과적인 이미지만 던져주는 식이었다.
이런 불친절한 대본은 현장에서 곧바로 갈등의 불씨가 됐다. 이미숙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찍기 전까지의 과정이 버라이어티하다”며 “그거 때문에 현장에서 수없이 다투는 것”이라고 회상했다. 만약 당신이 배우라면, 구체적인 지시 없이 민감한 장면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그는 “‘감독님 이건 수위가 어느 정도냐’라고는 물어본다”면서도 “근데 그걸 자세하게 얘기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현장 가면 달라지니까 거기서 촬영하느니 마느니 그런 게 되게 많았다”고 밝혔다. 배우의 최소한의 방어 장치였던 ‘사전 협의’가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잦았다는 의미다.
배우 아닌 감독 만족 위한 촬영…결국 터진 갈등
문제는 단순히 소통이 부족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미숙은 일부 감독의 불순한 의도를 직접적으로 폭로했다. 그는 “자기들 만족하느라고 (에로물을) 찍은 감독들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작품의 완성도가 아닌, 개인의 만족을 위해 배우에게 무리한 연출을 강요하는 감독이 존재했다는 증언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배우가 감독의 요구를 견디다 못해 촬영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미숙은 “촬영하다가 배우가 못한다고 나가서 한참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며 “감독이 포기하든지 배우가 포기하든지 둘 중 하나”였다고 당시의 험악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이미숙의 이번 발언은 70~80년대 한국 영화계, 특히 여배우들이 처했던 열악한 제작 환경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체계적인 시스템 대신 감독 개인의 역량과 인성에 모든 것이 좌우되던 시절, 배우의 인권이 어떻게 다뤄졌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조선미 기자 jsmg@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