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렌토·스포티지 가격 급등, 고급화 전략에 서민들만 ‘한숨’

국산 SUV 가격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20년 사이 밥상 물가가 오르는 동안 자동차 가격은 그야말로 로켓처럼 치솟았다. 2005년과 2025년을 비교했을 때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57.2% 올랐지만, 국내 대표 SUV 모델들의 가격 인상 폭은 이를 비웃듯 훌쩍 뛰어넘었다. 자녀를 둔 가장들이 현실적인 패밀리카로 낙점했던 모델들이 이제는 쉽게 넘볼 수 없는 ‘귀하신 몸’이 되어버린 셈이다. 단순한 물가 상승을 넘어 체급 변화와 첨단 사양 무장으로 몸집을 불린 국산차의 가격 변천사를 짚어봤다.
더 뉴 쏘렌토(출처=기아)
더 뉴 쏘렌토(출처=기아)


물가 상승률 2배 육박, ‘억’ 소리 나는 가격표

과거 자동차 제조사들은 연식 변경 때 슬그머니 상위 트림 가격만 올리는 전략을 썼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다르다. 가장 기본이 되는 ‘깡통’ 모델부터 가격을 대폭 인상하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와 자동차 업계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20년 전 2,000만 원 초반이면 충분히 구매했던 중형 SUV가 이제는 3,000만 원 중반을 훌쩍 넘겨야 겨우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다.
KGM 무쏘 EV 측정면 (출처=KGM)
KGM 무쏘 EV 측정면 (출처=KGM)


기아 쏘렌토, 국민 아빠차의 화려한 변신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준 모델은 기아 쏘렌토다. 2005년 당시 1세대 쏘렌토는 프레임 보디 기반의 튼튼한 정통 SUV였다. 당시 2륜 구동 기본형 가격은 2,034만 원.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 큰맘 먹으면 충분히 구매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5년형 4세대 쏘렌토는 완전히 다른 차가 됐다. 도심형 SUV로 성격을 바꾸며 승차감을 개선했고, 2.5 가솔린 터보 기본 트림 가격은 3,580만 원으로 책정됐다. 시작가 기준으로 무려 76%나 급등했다. 물가상승률보다 19% 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물론 뼈대부터 바뀐 모노코크 구조와 각종 안전 사양 탑재를 감안해야겠지만, 소비자 체감 인상 폭은 상당하다.

쏘렌토 / 기아
쏘렌토 / 기아

사회초년생의 친구 ‘스포티지’, 몸값 2배 껑충

충격적인 수치는 기아 스포티지에서 나온다. 2005년 SUV 판매 1위를 달리며 ‘국민차’ 반열에 올랐던 스포티지의 당시 시작가는 1,472만 원이었다. 지금의 경차 캐스퍼나 레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당시엔 사회초년생도 할부를 통해 큰 부담 없이 오너가 될 수 있었다.

현재 판매 중인 신형 스포티지는 덩치를 준중형급 이상으로 키우며 1.6 가솔린 터보 모델 기준 2,863만 원부터 시작한다. 최저가가 20년 전보다 94.5%나 폭등해 거의 두 배가 됐다.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스포티지를 사려면 ‘영끌’이 필요해진 시대다. 현대차 싼타페 역시 2005년 2,272만 원에서 현재 3,606만 원으로 59% 가까이 오르며 만만치 않은 몸값을 자랑한다.
기아 스포티지 4세대 측정면 (출처=기아)
기아 스포티지 4세대 측정면 (출처=기아)

“이름만 같지 딴 차”... 첨단 기술이 부른 가격 인상

이러한 가격 급등을 제조사의 탐욕으로만 몰아세우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상품성 강화’와 ‘체급 파괴’를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과거에는 에어백 몇 개와 ABS 정도가 안전 사양의 전부였다면, 지금은 차로 이탈 방지, 전방 충돌 방지 보조 같은 첨단 

2026 싼타페/출처-현대차
2026 싼타페/출처-현대차
기능이 기본 트림부터 탑재된다. 여기에 최근 대세가 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선택 비중이 늘어나면서 실구매 가격은 더 높아지는 추세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20년 전 차와 지금의 차는 이름만 같을 뿐, 성능과 안전성 면에서 완전히 다른 등급의 제품”이라며 가격 인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월급 봉투는 얇은데 차 값만 ‘고공행진’

문제는 소득이 차 값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술 발전과 안전 사양 추가는 반가운 일이지만, 그 비용 청구서가 오롯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면서 가계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차 값으로 집 산다”는 말은 옛말이 됐지만, “차 사려다 집 못 산다”는 말은 현실이 될 판이다. 특히 전기차 전환과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로 인해 앞으로 신차 가격은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대차 싼타페 블랙 엑스테리어 (출처=현대차)
현대차 싼타페 블랙 엑스테리어 (출처=현대차)
과거 1,400만 원대 스포티지의 추억을 가진 아빠들에게, 3,000만 원이 넘는 가격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닌 넘기 힘든 현실의 벽으로 다가오고 있다. 소비자들의 현명한 소비와 제조사의 합리적인 가격 정책 사이의 줄타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