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변신한 신형 싼타페, 그러나 판매량은 여전히 쏘렌토의 벽을 넘지 못했다
“가장 잘 만든 차보다 결정하기 쉬운 차”… 중형 SUV 시장의 선택 기준이 바뀌고 있다

쏘렌토 / 기아
쏘렌토 / 기아




대한민국 중형 SUV 시장의 왕좌는 여전히 굳건하다. 현대차가 파격적인 디자인과 최신 사양으로 무장한 신형 싼타페를 내놓았지만, 기아 쏘렌토의 아성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모양새다.

실제로 올해 월간 판매량에서 싼타페는 단 한 번도 쏘렌토를 앞지르지 못했다. 새로운 플랫폼, 하이브리드 중심의 효율적인 파워트레인, 압도적인 실내 공간 등 상품성만 놓고 보면 싼타페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은 한결같이 쏘렌토를 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신차 효과의 부재를 넘어, 중형 SUV 시장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기준 자체가 변했다는 강력한 신호다.

압도적 판매량 격차가 보여준 신뢰의 차이





쏘렌토 실내 / 기아
쏘렌토 실내 / 기아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누적 판매량은 두 모델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준다. 쏘렌토는 9만 대 판매를 돌파하며 독주 체제를 굳힌 반면, 싼타페는 5만 대 초반에 머물렀다. 3만 6천 대 이상 벌어진 이 격차는 단순한 인기 차이를 넘어 ‘신뢰’의 격차를 의미한다.

특히 중형 SUV를 구매하는 핵심 소비층인 30~40대 가장들의 소비 패턴이 더욱 신중해졌다는 점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가족 전체의 이동을 책임지는 패밀리카로서, 실패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심리가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쏘렌토는 수 세대에 걸쳐 ‘국민 아빠차’라는 이미지를 쌓아오며 이러한 신뢰를 확보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차 vs 질문이 남는 차



쏘렌토 / 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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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렌토의 가장 큰 무기는 ‘설명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도로 위에서, 아파트 주차장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SUV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그 자체로 ‘검증된 선택’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소비자들은 쏘렌토를 구매하는 순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반면 신형 싼타페는 선택과 동시에 주변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각지고 강렬한, 소위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은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부담스러운 요소다. 왜 이 차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은, ‘실패 없는 선택’을 원하는 패밀리카 구매자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과정일 수 있다.

패밀리카 시장에서 개성은 리스크다



쏘렌토 / 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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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태우고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패밀리카 시장에서 과도한 개성은 때로 양날의 검이 된다. 눈에 띄는 디자인은 운전자의 만족감을 높일 수 있지만, 동시에 중고차 가치 하락이나 주변의 부정적 평가 같은 불안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쏘렌토는 ‘안정감’이라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만, 싼타페는 ‘취향’이라는 질문을 남긴다. 중형 SUV가 개인의 표현 수단이 아닌, 가족을 위한 생활 필수재로 인식되면서 이러한 차이는 구매 결정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감성적인 만족감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이성적인 판단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법인, 리스, 장기렌트 시장에서 쏘렌토가 꾸준히 강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시장은 디자인 호불호나 감가상각 리스크를 철저히 배제하고 가장 무난하고 안정적인 선택지를 선호한다. 이렇게 쌓인 안정적인 수요는 다시 신뢰를 만들고, 개인 소비자들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완성했다.

쏘렌토 실내 / 기아
쏘렌토 실내 / 기아


결론적으로 현재 대한민국 중형 SUV 시장은 ‘가장 혁신적인 차’가 아닌 ‘가장 고민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차’가 승리하는 전장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쏘렌토의 위치는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