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EU의 갑작스러운 정책 선회에 업계 ‘술렁’
저가 공세 나선 중국 전기차... 현대차·기아 유럽 시장 입지 흔들리나
GV60 / 제네시스
전기차만이 유일한 해답인 줄 알았다. 2035년까지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던 유럽연합(EU)의 야심 찬 계획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최근 EU는 e퓨얼(합성연료)이나 바이오디젤 등 대체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조건부로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를 늦추고 다양한 기술이 공존하는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신호탄으로, 전기차 ‘올인’ 전략을 펼쳐온 현대차그룹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현대차 발등에 떨어진 불
EV9 / 기아
이러한 정책 변화는 현대차에 결코 가볍지 않은 충격파다. 내수 시장의 전기차 수요가 주춤한 상황에서, 현대차는 유럽을 전기차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삼아왔다. 현대차·기아는 유럽에서 연간 100만 대 이상을 판매하며, 이 중 전기차 비중을 꾸준히 늘려왔다.
아이오닉 시리즈와 EV6·EV9 등 전용 전기차가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인지도를 쌓아 올린 상황에서, EU의 정책 선회는 곧바로 수요 구조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판매 비중이 단 몇 퍼센트만 줄어도 연간 수만 대의 판매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며 “전동화를 서둘러 온 현대차로서는 전략의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엎친 데 덮친 격 중국의 공세
경쟁 구도의 재편 역시 현대차의 고민을 깊게 만든다. 폭스바겐, BMW 등 유럽 현지 브랜드들은 여전히 강력한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이들은 곧바로 주력 모델을 앞세워 시장 반등을 꾀할 수 있는 체력을 갖췄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한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의 공세는 이미 거세다. BYD를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은 유럽 시장에 속속 진출하며 저가 모델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현대차가 고성능·고품질 전기차로 승부수를 던진 상황에서, 유럽 토종 브랜드와 중국 저가 브랜드 사이에 끼이는 ‘넛크래커’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씰 / BYD
위기 속 기회 전략 수정은 필수
물론 이번 변화가 위기만은 아니다. 현대차는 투싼, 스포티지 등 유럽에서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링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모델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EU의 정책 변화는 오히려 전기차에 집중됐던 투자 부담을 분산시키고,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조합해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기회가 될 수 있다.
결국 유럽의 정책 수정은 전기차로의 전환이라는 큰 방향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과 속도를 현실에 맞게 조절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전기차 단일 노선에 대한 위험 부담을 줄이고, 하이브리드와 합성연료 등 다양한 기술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전기차가 미래의 중심이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그 길에 이르는 방식은 더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EV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유연한 기술 조합으로 지속가능한 성장 해법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유럽발 변화의 바람에 현대차가 어떤 묘수를 내놓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스포티지 / 기아
타이칸 / 포르쉐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