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만나는 홍콩 느와르 전성기, 유덕화부터 양조위까지…

의리와 배신, 도시의 고독과 비극적 사랑,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짜 남자들의 이야기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어둠 속에서 성냥개비나 이쑤시개를 입에 무는 남자의 모습. 80~90년대 극장가를 풍미했던 홍콩 느와르의 상징적인 이미지다.

쌍권총을 든 사나이들의 뜨거운 의리와 배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당시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더욱 선명해진 화질과 함께 넷플릭스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그 시절의 그 감성 그대로 간직한 홍콩 느와르 명작들은 소개한다.

낭만과 비극, 스타일로 기억되다

홍콩 느와르가 단순히 어두운 범죄 세계만을 그린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 애틋하고 강렬한 사랑 이야기로 기억된다.

진목승 감독의 ‘천장지구’(1990) 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조직원 아화(유덕화)와 부잣집 딸 조조(오천련)의 비극적 사랑은 시대를 초월한 감동을 준다. 특히 코피를 흘리는 아화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조조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질주하는 마지막 장면은 홍콩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천장지구(1990), 진목승 감독, 유덕화, 오천련 / 넷플릭스
천장지구(1990), 진목승 감독, 유덕화, 오천련 / 넷플릭스


반면 왕가위 감독의 ‘타락천사’(1995) 는 사랑과 고독을 스타일리시한 영상미로 풀어낸다. 킬러(여명)와 그의 파트너, 그리고 도시의 밤을 배회하는 외로운 인물들의 이야기는 직접적인 서사 대신 감각적인 이미지와 음악으로 채워진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네온사인 불빛 아래 펼쳐지는 도시의 고독은 홍콩 느와르가 도달한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타락천사(1995), 왕가위 감독, 여명 / 넷플릭스
타락천사(1995), 왕가위 감독, 여명 / 넷플릭스


권력과 배신, 날것 그대로의 범죄 세계

홍콩 느와르의 또 다른 축은 냉혹한 범죄 조직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무간도’(2002) 는 할리우드에서 ‘디파티드’로 리메이크될 만큼 치밀한 구성과 심리 묘사로 극찬을 받았다. 경찰에 잠입한 조직원(유덕화)과 조직에 잠입한 경찰(양조위),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상대를 쫓아야 하는 두 남자의 기구한 운명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펼쳐지는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은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압도적이다.
무간도(2002), 유덕화, 양조위 / 넷플릭스
무간도(2002), 유덕화, 양조위 / 넷플릭스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2005) 는 범죄 조직의 권력 다툼을 ‘선거’라는 시스템을 통해 보여주며 폭력의 이면을 냉정하게 파고든다. 점잖은 대화와 투표 절차 뒤에 숨겨진 잔혹한 암투와 배신은 현실 정치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서늘함을 전달한다.
흑사회(2005), 두기봉 감독 / 넷플릭스
흑사회(2005), 두기봉 감독 / 넷플릭스


실존했던 마약왕의 일대기를 그린 ‘도성대형’(1991) 역시 빼놓을 수 없다. 1960~7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범죄 세계의 정점에 오르고 몰락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탐욕과 배신이 난무하는 암흑가를 통해 당시 홍콩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도성대형(1991), 두기봉 감독 / 넷플릭스
도성대형(1991), 두기봉 감독 / 넷플릭스

시대를 초월한 매력, 왜 다시 홍콩 느와르인가

소개된 다섯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홍콩 느와르의 매력을 보여준다. 낭만적 비극에서부터 냉혹한 현실 고발까지, 이들 작품에는 단순히 ‘범죄 영화’라는 틀에 가두기 힘든 깊이가 있다. 의리와 배신, 정체성의 혼란, 도시 속 개인의 고독과 같은 주제들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효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 영화 평론가는 “홍콩 느와르에는 1997년 홍콩 반환을 앞둔 시대적 불안감과 정체성의 고민이 짙게 배어있다”며 “그 시절의 공기가 만들어낸 독특한 분위기는 다른 어떤 영화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매력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