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탱크데이’ 스타벅스 초유의 사태
충성 고객도 돌아섰다
정용진 결국 대표 전격 경질

5·18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에 진행된 스타벅스의 한 이벤트가 전국적인 공분으로 번졌다.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홍보 게시물이 공개되자, 광주 시민과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는 물론 정치권과 소비자들까지 강하게 반발했다. 논란은 단순한 마케팅 실수를 넘어 “역사 인식 부재”라는 비판으로 확산됐고,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며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전격 경질하는 초강수까지 이어졌다.
사진=생성형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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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탱크데이·책상에 탁!’…5·18 연상시킨 문제의 문구

논란은 18일 오전 스타벅스가 진행한 텀블러 프로모션에서 시작됐다. 스타벅스는 ‘단테·탱크·나수데이’ 이벤트를 열고 ‘탱크 시리즈’ 텀블러 판매를 시작했다. 문제는 스타벅스 앱과 홈페이지에 게시된 홍보 문구였다.

이벤트 페이지에는 ‘탱크데이’라는 표현과 함께 날짜 ‘5/18’이 강조됐고, 여기에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까지 포함됐다. 이를 본 이용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탱크 진입을 떠올리게 하는 데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의 악명 높은 은폐 발언까지 연상시킨다는 이유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도대체 누가 승인한 문구냐”, “5·18을 조롱한 수준”, “365일 중 하필 오늘 탱크 마케팅을 하냐”는 비판이 이어졌다. 일부 소비자들은 불매 운동 움직임까지 보였다.

특히 평소 정치적 이슈와 거리를 두던 스타벅스 관련 네이버 카페에서도 비판 여론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도저히 쉴드가 안 된다”, “내부에서 아무도 문제를 못 느꼈다는 게 더 충격”이라는 반응이 줄줄이 올라왔다. 실제로 일부 이용자들은 스타벅스 멤버십인 ‘버디패스’를 해지하거나 스타벅스 카드 환불 인증 사진까지 공유하며 강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사진=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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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시민사회·정치권 격앙…“역사적 참사 수준”

비판은 소비자 반응을 넘어 시민사회와 정치권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5·18기념재단은 성명을 통해 “기업의 이윤 추구와 마케팅의 자유도 공동체의 비극적 역사 위에 행사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광주전남추모연대 역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피맺힌 역사를 상업적 마케팅의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명백한 역사적 참사”라고 규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도 “광주 시민에게 탱크는 단순한 상품명이 아니라 국가폭력의 참혹한 기억”이라며 스타벅스 측에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논란은 곧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과거 행보와도 연결됐다. 온라인에서는 과거 ‘멸공’ 발언과 각종 정치적 논란을 언급하며 “의도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됐다.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스타벅스는 문제 문구를 수정했다. ‘탱크데이’는 ‘탱크텀블러데이’로, ‘책상에 탁!’은 ‘작업 중 딱~’으로 변경됐다. 그러나 이미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다. 결국 스타벅스는 관련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고 이벤트도 중단했다.
사진=정용진 회장
사진=정용진 회장


■ 정용진 직접 사과…스타벅스 대표 전격 해임

사태가 커지자 신세계그룹은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정용진 회장은 즉각 내부 조사와 책임자 중징계를 지시했고, 결국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전격 해임했다.

신세계그룹은 “부적절한 마케팅 진행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 대표를 즉시 해임한다”고 밝혔다. 이번 이벤트를 기획하고 승인한 관련 임원 역시 해임 수순을 밟게 됐으며, 관련 직원들에 대한 징계 절차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 측은 “정 회장이 이번 사고가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날 발생한 것에 대해 격노했다”며 “그룹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준의 조치를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생성형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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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19일 별도의 공식 사과문도 발표했다. 그는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될 수도 없는 부적절한 마케팅이었다”며 “5·18민주화운동 영령과 유가족, 광주 시민,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안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고통과 희생을 가볍게 여긴 변명의 여지 없는 잘못”이라며 “그룹 전체의 역사 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정 회장은 또 ▲사태 발생 경위 및 승인 절차 조사 ▲마케팅 콘텐츠 검수 체계 재정비 ▲심의 절차 강화 ▲전 임직원 대상 역사·윤리 교육 실시 등을 약속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광고 문구 논란을 넘어, 대기업의 역사 인식과 브랜드 감수성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여준 사건으로 평가된다. 소비자들은 이제 제품의 품질과 가격뿐 아니라 기업이 어떤 역사 의식과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는지까지 함께 바라보고 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처럼 한국 현대사에서 상징성이 큰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기업의 무감각한 접근이 얼마나 큰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지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은정 기자 kej@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