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기술’로 만들었지만 해외에선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국산 플래그십 세단

기술 제휴가 낳은 뜻밖의 나비효과, 수출 제한의 전말



쌍용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 ‘체어맨’은 유독 국내 도로에서만 익숙한 모델이다. 한때 국산 최고급 세단의 대명사였지만, 해외에서는 그 존재감을 찾기 어려웠다. 여기에는 개발 초기부터 얽혀있던 메르세데스-벤츠와의 복잡한 관계가 숨어있다.

체어맨이 처음부터 내수 전용 모델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은 글로벌 브랜드의 기술력을 등에 업은 야심 찬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쌍용차와 벤츠 사이에 얽힌 이야기의 실마리는 바로 이 ‘기술 제휴’와 ‘디자인 유사성’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에서 풀린다.

벤츠 기술로 만들었는데, 왜 벤츠 눈치를 봤나





이야기는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쌍용차는 다임러-벤츠와 기술 제휴 계약을 맺고 플래그십 세단 개발에 착수했다. 이 계약을 통해 체어맨은 벤츠 W124 E클래스의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기반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단순한 디자인 모방이 아닌, 뼈대부터 벤츠의 기술이 녹아든 셈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기술적 기반이 된 W124가 아니라, 쌍용차가 독자적으로 완성한 체어맨의 외관 디자인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벤츠가 출시를 준비하던 신형 S클래스(W220)와 디자인이 상당히 유사했던 것이다.

쌍용차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의도적으로 베낀 것이 아님에도, 기술을 제공한 회사의 차세대 주력 모델과 외관이 겹쳐버렸다. 이 우연한 유사성은 결국 체어맨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우연히 닮은 디자인, 발목 잡힌 수출길





자사의 신차와 닮은 체어맨의 등장을 확인한 메르세데스-벤츠는 쌍용차에 몇 가지를 요청했다. 헤드램프를 포함한 일부 디자인을 변경하고, 무엇보다 벤츠의 주요 시장을 피해 수출해달라는 것이 골자였다.

이 요청은 사실상 수출길에 족쇄를 채운 것과 같았다. 북미나 유럽 등 대형 세단 수요가 높은 주요 시장에 진출할 수 없게 되면서 체어맨의 활동 무대는 국내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해외에서 체어맨을 거의 볼 수 없었던 배경이다.

결국 체어맨의 역사는 두 개의 벤츠 모델로 정리된다. W124 E클래스는 체어맨의 ‘기술적 아버지’ 역할을 했고, W220 S클래스는 의도치 않게 체어맨의 ‘수출을 막은 벽’이 된 셈이다. 이 독특한 개발 배경은 체어맨을 한국 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델로 기억하게 만든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