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 가능이라더니 가보면 고장... 충전기 숫자만 늘어난 전기차 인프라의 그림자
단순 보급을 넘어 ‘사용자 경험’ 개선이 시급한 이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전기차 충전소 / 과기부
전기차 충전기가 눈에 띄게 늘고 있지만, 운전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충전소는 많아졌는데 왜 충전은 더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충전기 숫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잦은 고장, 파편화된 시스템, 그리고 사업자의 수익성 악화라는 세 가지 핵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과연 양적 팽창의 그늘에 가려진 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민낯은 어떤 모습일까.
숫자 뒤에 가려진 현장의 목소리
최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전기차 이용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불편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GS차지비가 전기차 사용자 1,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가장 큰 불편 요인으로 ‘잦은 충전기 고장(52.7%)’이 꼽혔고, ‘충전기 부족(47.0%)’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충전기 절대 수의 부족보다, 막상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충전기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스마트폰 앱에는 ‘사용 가능’으로 표시돼 있지만, 현장에 도착하면 고장 나 있거나 다른 차가 사용 중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정확한 위치 정보 때문에 헛걸음하는 일도 잦아 이용자들의 불신만 키우고 있다.
아이오닉 9 / 현대자동차
사업자마다 제각각, 피로감만 쌓인다
충전 과정의 번거로움도 큰 장벽이다. 충전 사업자마다 별도의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해야 하는 파편화된 시스템은 이용자의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결제 방식 역시 통일되지 않아, 충전소에 따라 여러 개의 카드나 앱을 준비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현대자동차는 이러한 충전 편의성 문제가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여기에 무거운 충전 케이블, 차량별로 다른 충전구 위치, 비효율적인 주차 동선 등 물리적인 불편함까지 더해져 사용자 경험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고치면 손해? 악순환의 시작
GV60 / 현대차그룹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충전 사업자들의 낮은 수익성은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치면 손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충전 사업의 수익 구조가 취약하다고 토로한다.
높은 전기 기본요금에 비해 가동률이 낮아 많은 사업자가 유지보수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는 결국 충전기 고장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지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돌아간다. 공동주택에서는 전기차를 이용하지 않는 입주민에게 비용이 전가되는 문제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제는 경험을 충전할 시간
이러한 총체적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제 양적 확대에서 질적 성장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량을 충전기에 연결하는 즉시 인증과 결제가 완료되는 ‘플러그 앤 차지(Plug & Charge)’ 기술의 보편화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또한, 데이터 표준화를 통한 통합 플랫폼 구축, 실제 사용량 기반의 합리적인 요금 체계 개편, 유지관리 품질과 연동된 보조금 정책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기차 대중화의 성패는 이제 얼마나 많이 설치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편리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아이오닉 9 충전 포트 / 현대자동차
EV6 / 기아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