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타기 창피해”


법인차에 연두색 번호판을 도입했더니 벌어진 일은 놀라웠다.

고가 법인 차량들이 갑자기 ‘반값 할인’을 받은 것처럼 신고되기 시작한 것이다. 2억 원이 훌쩍 넘는 BMW의 ‘M8 컴페티션 쿠페’가 5천만 원대로 둔갑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는 법인 차량의 사적 사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연두색 번호판 제도를 피하기 위한 꼼수로 의심된다.
M8 컴페티션 쿠페 (출처=BMW)


‘다운계약’ 꼼수, 6천 대 넘는 법인차가 연두색 번호판 ‘회피’

올해 상반기 국내에서 팔린 8천만 원 이상 고가 차량 중 6천 대 이상이 법인 소유임에도 연두색 번호판을 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등록된 수입 법인 차량은 총 4만 7242대. 이 중 8천만 원을 넘는 고가 차량은 1만 8898대에 달했다.

하지만 이 중 6290대는 8천만 원 미만으로 신고되어 연두색 번호판 부착을 피해 갔다. 심지어 1억 원 이상 차량 중 306대도 8천만 원 미만으로 신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도 ‘혀 내둘러’... “반값 할인은 말도 안 돼”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할인율이 높을 수는 있지만, 반값 이하로 판매되는 경우는 본 적 없다”며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허위 신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두색 번호판, ‘세금 폭탄’ 피하려는 꼼수 부추겼나

연두색 번호판 제도는 법인 차량의 사적 사용을 막고, 세금 혜택을 제한하기 위해 도입됐다. 연두색 번호판이 없는 차량은 운행 경비와 감가상각비를 인정받지 못해 세금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일부 법인들이 ‘다운계약’과 같은 꼼수를 통해 연두색 번호판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고가 수입차 판매량 ‘뚝’... 연두색 번호판 ‘풍선 효과’ 우려도


연두색 번호판 제도 시행 후 고가 수입차 판매량은 급감했다. 올 상반기 법인 등록 수입차는 전년 동기 대비 8029대 감소한 4만 2200대에 그쳤다. 이는 최근 10년 중 최저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연두색 번호판 제도가 ‘풍선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인들이 고가 차량 대신 리스나 렌터카를 이용하거나, 중고차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 “법인-판매사 계약 내용까지 파악 어려워”

국토교통부는 “차량 등록 과정에서 법인과 판매사 간의 세부 계약 내용까지 파악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국토부의 관리가 느슨해지면서 편법이 확산되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심도 있는 조사와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두색 번호판, ‘얌체족’ 막을 수 있을까?

연두색 번호판 제도는 법인 차량의 사적 사용을 막고, 공정한 세금 부과를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다운계약’과 같은 꼼수가 끊이지 않으면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연두색 번호판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철저한 관리 감독을 통해 ‘얌체족’을 막아야 할 것이다.